본문 바로가기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와 생활

가사로 읽는 라틴아메리카: 레게톤에서의 정체성과 저항

- Bad Bunny의 음악 속 사회 비판과 문화적 목소리

 

여러분들은 레게톤 혹은 라틴팝이라는 음악 장르를 아시나요? 저는 스페인 교환학생 시절 자주 접하면서 이 장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요, 한국의 대표적 음악 장르인 케이팝 혹은 발라드와는 대조적으로 레게톤은 대개 강렬한 리듬과 직설적인 가사가 큰 특징입니다. 덕분에 그 음악과 그 음악이 함유하고 있는 메시지를 통해 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자주 듣는 푸에르토 리코 출신의 레게톤 가수 "배드버니"의 곡과 가사들을 중심으로 레게톤에서의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과 사회적 저항 정신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라틴아메리카 대중음악과 사회 비판의 관계

 라틴아메리카의 대중음악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오랫동안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중요한 매체 역할을 해왔습니다. 쿠바의 누에바 트로바(Nueva Trova)나 칠레의 칸시온 프로테스타(Canción Protesta)처럼 민중의 삶과 억압의 현실을 노래한 장르는 물론, 오늘날 레게톤(reggaetón)과 라틴 트랩(trap latino)에서도 그러한 흐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아티스트들이 레게톤과 트랩의 음악적 문법을 활용해 정체성, 성별, 인종, 계급 등 복잡한 사회적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 장르들은 새로운 정치성과 문화적 깊이를 획득하고 있습니다.

레게톤과 라틴 트랩의 기원과 진화

 레게톤은 1990년대 푸에르토리코의 스트리트 컬처에서 태동한 장르로, 자메이카 댄스홀과 힙합, 라틴 리듬이 결합된 형태입니다. 초기에는 마초적인 가사와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스타일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점차 새로운 세대 아티스트들의 등장으로 그 담론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라틴 트랩은 미국의 트랩 음악이 스페인어권 문화와 결합해 탄생한 장르로, 더 어두운 현실과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는 데 강점을 가집니다. 이 두 장르 모두, 이제는 라틴아메리카 젊은이들의 현실과 열망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Bad Bunny: 퀴어 정체성과 페미니즘을 포용한 새로운 남성상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Bad Bunny(배드 버니)는 라틴 트랩과 레게톤의 문법을 깨부순 대표적인 아티스트입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 퀴어 정체성과 젠더 표현의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기존 라틴 대중음악의 남성성 중심 서사를 해체합니다.
예를 들어, 그의 곡 〈Yo Perreo Sola〉(나는 혼자 댄스해)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클럽에서의 성적 주체성을 강조하며, 뮤직비디오에서는 Bad Bunny 본인이 드래그 퀸으로 등장해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여성이나 LGBTQ+ 커뮤니티가 안전하게 춤출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음악이 사회 변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Bad Bunny는 2020년 푸에르토리코에서 발생한 여성혐오 범죄에 항의하기 위해 TV 프로그램에 여성 피해자의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출연하며 음악 외의 영역에서도 강한 정치적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러한 행보들을 통해 배드버니는 큰 지지층을 형성할 수 있었고 덕분에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Residente: 정치, 민족, 기억의 랩 아티스트

 Residente는 과거 라틴 힙합 그룹 Calle 13의 멤버로 시작해, 현재는 솔로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강력한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랩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단지 비판에 그치지 않고,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역사적 기억과 정체성, 식민주의의 유산을 조명합니다.
 대표적인 곡 〈Latinoamérica>는 “Soy lo que me enseñó mi padre / El que no quiere a su patria no quiere a su madre”(나는 아버지가 가르쳐준 존재,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어머니도 사랑하지 않는 자)라는 가사처럼, 라틴아메리카 정체성과 자존감을 회복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곡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이들에게 '문화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의 다른 곡 **〈René〉**에서는 개인적인 트라우마, 가족, 성장 배경을 통해 보다 인간적인 접근으로 사회적 현실을 드러내며 청자의 감정적 공명을 이끌어냅니다.


가사 분석: 음악 속에 숨겨진 저항의 메시지

- Bad Bunny: 퀴어 정체성과 페미니즘을 포용한 새로운 남성상

앞서 말했듯, Bad Bunny는 젠더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으로 유명하며, 그의 대표곡 〈Yo Perreo Sola〉에서 다음과 같은 가사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외칩니다:

"Yo perreo sola"
(나는 혼자 춤춰)

 이 단순한 문장은 라틴아메리카의 남성 중심 클럽 문화에 맞선 선언으로 읽힙니다. 클럽에서 여성이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만 안전하다는 통념을 뒤집으며, 여성의 자유로운 공간을 주장하는 상징적 문장이죠. Bad Bunny는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여성으로 분장하며 시각적으로도 젠더의 경계를 허뭅니다.
 또한 곡 〈Andrea〉에서는 여성 폭력 피해자의 삶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Andrea nació un 1 de mayo / Quiere ser actriz, tiene un par de ensayos"
(안드레아는 5월 1일에 태어났고 / 배우가 되고 싶어, 몇 번 연습도 해봤지)

 이 서정적인 서사는 마치 일기장처럼 여성의 꿈과 현실을 그려냅니다. 이 곡은 푸에르토리코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그 가사는 피해자의 이름과 삶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질문을 던집니다.

 

- Bad Bunny : 음악 속에 숨겨진 저항의 메시지

 Bad Bunny의 곡 〈Estamos Bien〉은 팬데믹과 경제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말하는 곡이지만, 그 안에 묻어 있는 현실 인식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No me va bien, pero tampoco me va mal / No tengo todo, pero tengo a mis panas"
(잘 지내진 않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아 / 다 가진 건 아니지만, 친구들은 있어)

 이 문장은 현실의 모순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체의 의미를 강조하며,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삶의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청년 세대가 겪는 불안과 고립을 담백하게 풀어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편 Residente의 〈This Is Not America〉에서는 다음과 같은 날선 비판이 등장합니다:

"This is not America / America is not a country, it’s the name of a continent"
(여긴 아메리카가 아냐 / 아메리카는 나라가 아니라, 대륙의 이름이지)

 이 곡은 ‘아메리카’를 오직 미국만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하는 문화적 오만에 대한 반격이며, 라틴아메리카의 존재를 지우는 서구 담론에 대한 강력한 저항입니다. 뮤직비디오에는 남미 독재, 원주민 탄압, 사회 운동가의 투쟁이 시각적으로 표현되며 가사와 함께 사회적 메시지를 극대화합니다.

가사로 읽는 라틴아메리카: 레게톤과 트랩에서의 정체성과 저항


 다들 이번 주제도 재밌게 읽으셨나요? 마지막으로 라틴 트랩과 레게톤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들에 대해 파헤쳐보는 Q&A 시간을 가지며 이번 글은 마무리하겠습니다.

🎧 Q&A: 라틴 트랩과 레게톤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


Q. 레게톤은 과거에 왜 비판의 대상이 되었나요?
A. 초창기 레게톤은 종종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다루는 가사를 포함해, 여성혐오적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 아티스트들이 등장하면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Bad Bunny는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Si no quiere bailar contigo, respeta. Ella perrea sola."
(그녀가 너랑 춤추기 싫다면 존중해. 그녀는 혼자 춤춰.)

이러한 가사는 여성의 자율성과 안전한 공간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며, 레게톤의 메시지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Q. Bad Bunny는 왜 ‘혁신적’이라고 평가받나요?
A. Bad Bunny는 라틴 음악에서 드물었던 퀴어 연대, 페미니즘, 감정 표현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새로운 남성상을 제시합니다. 그가 곡 **〈Solo de Mí〉**에서 부른 이 구절은 폭력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Yo no soy tuyo ni de nadie, yo soy solo de mí."
(나는 너의 것도, 누구의 것도 아니야. 나는 오직 내 자신이야.)

이처럼 그는 사랑과 소유의 경계를 해체하며, 자율성과 자기애를 중심에 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라틴아메리카 청년들의 목소리가 된 음악

 이처럼  배드버니는 음악을 통해 언어적, 비주얼적 상징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저항과 자기 표현을 하나의 ‘예술적 정치행위’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레게톤과 라틴 트랩은 단순한 댄스 음악을 넘어, 라틴아메리카 청년 세대의 정체성과 사회적 분노,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열망이 응축된 예술 형식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레게톤과 라틴 트랩은 단순히 신나는 클럽용 댄스 음악을 넘어, 라틴아메리카 청년 세대의 정체성과 사회적 분노,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열망이 응축된 예술 형식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K-POP 대신 레게톤 한 곡 들으면서 잠시 행복한 휴식을 취하는 건 어떠실까요? 오늘의 이야기도 재밌게 읽어주셨길 바라며 다음 글로 찾아뵙겠습니다.